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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노트-눅 2:1-7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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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마리오한인연합감리교회 작성일21-09-24 12:22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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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 아구스도의 영(명령)

누가복음 2:1-7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삶과 일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배하며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드리고, 구원받는 백성이 된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오늘은 2장 서두에 나오는 로마황제의 호적명령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황제를 가이사라 불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BC27-AD14) 라고 했는데, 가이사, 아구스도, 이 두 단어가 실은 존칭같은 말입니다. 가이사는 황제란 뜻인데 단어를 다르게 읽으면 시이저, 카이사르라고 읽습니다. 같은 뜻으로 카이저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구스도는 존엄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구스도 가이사로 말하면, “존엄한황제라는 뜻이 됩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Gaius Octavius Thurinus)였는데, 그 이전에 황제였던 율리우스 시저의 양아들이 되면서 이름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저 옥타비아누스”(위키사전)로 달라졌습니다.

 

그를 로마인들이 위대하게 불렀던 이유는, 그당시 동쪽 헬라의 제국, 알렉산더 후에 갈라졌던 땅들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싸움의 대상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대였는데, (그리스 서쪽)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함으로 지역의 패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가이사가 이제 세금을 걷어서 부한 제국을 만들려고 인구조사를 시키는 것입니다. 1절부터,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그리고 4절에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복음서중에도 누가복음의 내용이 참 설명이 잘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역사를 설명하면서, 가이사 아구스의 때를 말했을 때 얼마나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좋았겠습니까? 이 말씀을 한 두 번만 읽어도 눈에 들어오는바가 있습니다. 1가이사의 명령7구유에 뉘었으니...”입니다가장 위에서 내려진 명령앞에 가장 아래 낮은 곳에서 태어난 첫아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을 가진 황제의 명령이 내려지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생함으로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 말씀의 배경 또한, 변방의 한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호적등록을 위해 출타했다가 시작되는 세상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본문말씀, 예수님의 탄생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에 다시 배우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역사중에도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섭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한 국가가 완성되고 힘과 권세를 가진 가이사의 권력이 존재하던 제국안에서, 하나님은 풀뿌리같은 낮은 한 가정을 들어서 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여는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권력에 앉은 이들을 통해서만 세상역사를 주관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같이 작은 마을에서 호적등록을 하러가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로부터 영생의 싹을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주전 27년에 로마황제에 올랐을 때, 그 제국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Pox Romana! 세상은 이제 로마제국과 황제의 힘으로 평화를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 안에서 평화라는 말입니다세상역사를 볼때에,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화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의 일은 언제나 그 한계성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가이사 아구스도의 로마제국의 권세도, 평화도, 역사속에서 무너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평화와 기쁨은 그런 힘과 권세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로서 영생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땅에서 얻고 성취할 수 있는 많은 부와 힘을 통하여 세상을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안에서 깨닫고 배워야 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사람이 자기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과 노력을 무시하자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이 주장했던 말입니다. 그는, 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하는가를 기독교 관점에서 글로 적었습니다. 파스칼이 죽은 이후에 그의 글들은 모아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팡세”(생각) 입니다. 팡세에서 파스칼의 명언들이 나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도 있지요. 사람의 생각이 갈대처럼 왔다갔다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존재가 연약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연약함 중에도 사람은 생각을 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파스칼이 팡세를 쓴 것은 기독교 변증을 위해 쓴 글입니다. 그 팡세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겸손한사람이라 했습니다. 비록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주님과 함께 연합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2장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어렵고 어설픈 경황중에 출산을 맞이한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을 통해 당신의 섭리를 나타내셨습니다. 양을 치며 밤을 지새는 목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그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구세주 메시야의 탄생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나누시는 여러분께서, 금주의 복된 삶을 사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여 하나님과 연합한 인생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상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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