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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노트 (마태 2:1-6)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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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Lee 작성일18-12-29 10:57 조회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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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마태 2:1-6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가정마다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주일을 준비하면서 올해는 제가 목회서신을 대신해 성탄카드를 성도님들께 보내드렸습니다. 우리교회 이름으로 카마리오UMC 영어부 사무실에도 성탄카드를 드렸습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와 킨 목사님께도 카드를 드렸습니다. 해마다 킨 목사님과 인사를 나눌때면 그 목사님이 제게 묻습니다. “성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배와 순서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저도 대답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그 물음의 뜻이 더 있구나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심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라는 물음일 수도 있지요. 오늘날 우리에게 탄생하시고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우리들 성도들은 늘 그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1-2장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도의 신앙에 대하여 배울점이 있습니다.

 

이날은 임마누엘의 날입니다.

 

여러분 이 성탄절은 우리들의 큰 기쁨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마태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날에 우리는 주님께 환영의 예배를 드립니다. (Christ - Mass) 교회전통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으로 우리가 받은 축복을 네가지로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소망(HOPE)을 주셨습니다. 소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살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평화(PEACE)을 주셨습니다. 미움과 싸움의 세상에 주님은 오셨고, 평화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LOVE)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만 남겨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기쁨(JOY)도 주셨습니다. 항상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안에 기뻐하는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네가지, 소망과 평화, 사랑과 기쁨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심으로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달 12월 한달동안 대림절 기간에 하나하나 불을 켠 블루컬러 캔들들이 바로 그 네가지를 의미하는 촛불들입니다. 그 네가지를 하나로 묶어주는 둥근 Wreath 가운데에 흰색 촛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불로 켭니다. 임마누엘입니다. 마태 1:23b,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셨지만, 오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금 마음에 담을 신앙과 정신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Just for people! 의 정신이요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운데 임재하신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2장에 나옵니다.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마태복음 2장 오늘의 본문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경배하러 별을 따라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헤롯왕과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헤롯은 당황해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묻습니다. 어디에서 그리스도가 나겠느냐고....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입니다.... 이 장면들을 그대로 성극으로 해도 될만큼 내용이 한편의 드라마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 드라마에서 역할을 맡으면 누구를 하시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 아니면 황금, 유향, 몰약을 든 동방박사 세사람도 좋겠지요. 대제사장과 서기관 역할까지는 그런대로 하겠는데, 헤롯을 하라면 기분 나쁠까요? 왜 그렇습니까? 좋지않은 역할이지요. 헤롯의 등장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임마누엘의 정신(위와같은 소망과 평화, 사랑과 기쁨) 과 달랐습니다.

 

헤롯은 세상에 무엇을 나타내었습니까? 세상에 소망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소망만을 이루기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평화를 만들기보다는, 평화를 깨뜨립니다. 아기 예수를 잡겠다고 새로 태어난 수많은 생명들을 죽였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찾을 수 없고, 무자비한 왕이 되었습니다. 기쁨은 오직 자기만의 기쁨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큰 슬픔과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헤롯의 역할을 누가 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한편으로 생각해보세요. 역사적인 헤롯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이두메에서 났습니다. 성경지명으로 에돔사람이란 말입니다. 이두메란, 유대사회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던 지역입니다. 헤롯집안은 요즘식으로 좋게 말하면, 악착같이 물불가리지 않고 노력해서, 신분차별을 극복하고 왕으로 올라선 자수성가의 사람들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를 헤롯대왕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왕으로서 헤롯은 성경에서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모든 관심은 Just for me!, 자기의 부와 권세와 명예를 향한 욕심으로 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왕좌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도 차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들은, 나 자신의 모습에서 헤롯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자신 안에도 세상욕심이 가득하여 그 성품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헤롯이 멀리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박사들과 같이 예수님을 찾고 또 찾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목자들과 같이 자기의 일에도 성실하고 예수님을 맞는 일도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됩시다.

 

이제 이 성탄절에 박사들이 물었던 그 물음을 우리의 귀를 열고 다시 들어봅시다.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집에는 탄생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십니까?” “당신의 마음에는 오늘 나신 주님께서 계십니까?” 오늘 주님이 여러분의 심령에 이미 오셨으면, 나를 위한 욕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세상사람들이 힘들어서 가지않는 곳이지만 기꺼이 찾아가는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나를 위한 편안함으로부터 일어서서, 예수님처럼 아픈곳, 불편한 곳을 찾아가는 헌신이요 섬김을 실천할 것입니다마태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여러분, 이 한주간은 우리 자신에게도 박사들의 그 물음을 물으면서 지내보시기 바랍니다.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께서 만나는 분들과도 인사말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성탄절 맞으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오셨습니다. 왕으로 나신 주님이 우리교회에 계십니다.” 이 진심의 고백이 여러분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상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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