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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노트--갈라디아서 2:20,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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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Lee 작성일19-12-23 12:26 조회33회 댓글0건

본문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갈라디아서 2:20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원하지않는 실수와 착오로 인해 궂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가 볼때에, 그런 당황스런 일들조차도 본인과 주변인들에게 서로가 발전하는데 도움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집사님은 실수로 다른분의 차를 접촉하여 손실을 입었지만, 그 일로 그분과도 가까워지고 그분과 함께 신앙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담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말씀이 기록된 배경을 보아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문말씀 갈 2:20절의 이 유명하고 소중한 진리의 말씀이 베드로의 외식하는 행동을 배경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같이 모든 일을 합하여 선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어떻게 사는 것인지 가르쳐주었습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을 천천히 잘 읽어보시면, 그 내용이 참 깊이있는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이제 내가 육신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 자기 스스로를 버려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그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이 뜻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했는데, 십자가에 무엇을 못박았습니까? 율법을 기준으로한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율법, 즉 법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잘 지켰으면 안심합니다. 법에 걸렸으면 불안합니다. 문제는, 초대교인들도 율법의 기준으로 살려고하니까, 매사에 율법에 걸립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걸리고 법때문에 죄인의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율법을 잘못 지킨사람은 낙심하기 쉽습니다. 자기가 죄인이 되었다고 낙심합니다. 율법을 잘 지킨사람은 교만하기 쉽습니다. 자기가 의를 이루었다고 자랑하기 쉽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법을 잘 지켰다고 교만하고 못지켰다고 낙심하는 것은 구약적인 신앙입니다. 법이 무엇입니까? 법은 최상의 삶의 도구가 아닙니다. 사실, 법은 인간도덕의 삶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기준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말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법은 사람들이 살면서 최소한 이 정도는 지킵시다... 하는 기준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그 최소한의 삶의 기준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지, 시대가 지날수록 법이 자꾸만 많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기준을 자꾸만 그 법의 선에다 맞추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자기들의 율법의 기준에 다른 사람의 삶을 비추어서 때로는 자랑하고 교만해지며(바리새인들처럼), 그 기준이 안된다고 보이면 상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깨달을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이 깨달은 것이고,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진리입니다. 104,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기준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요, 은혜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그분의 사랑이 내삶의 기준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가 살면서 믿고 붙잡을 기준이 되었습니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법으로 살지말고 주님의 사랑으로 삽시다. 그러면 내가 나 자신을 볼때에도 사랑과 은혜의 관점으로 보게되고, 서로서로를 볼 때에도 오직 사랑과 은혜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상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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