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Beautiful Story)

"우동 한 그릇" 전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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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Lee 작성일20-05-29 17:04 조회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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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에 웅크린 두 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 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을 받았기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있는 사이에, 한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 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정에서는,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렸지만, 그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성하여, 가게 내부 수리를 하게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하고 의아스러워 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

<우동 한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을 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

하고있다, 어느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 모른다.

그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테이블이

빌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고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모여 가까운 신사(神社)에 그해의 첫참배를 가는 것이

5, 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 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의 동료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 있다. 입으로 말은 안 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달 10시 예약석'

비워둔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조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

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 있는 사람, 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를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다.

바겐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버코트를 손에 든 정장 슈트 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 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십수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 젖히고,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 ............. 여보!"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교오또(京都)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오또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며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다.

입구에서 가까운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껏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십년간 이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

"네엣! 우동 3인분!"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한발 앞서 불어 제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위 글을 인용한 페이지, https://fishpoint.tistory.com/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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